관점24 : 헬리녹스·이케아·마케터 숭, 핵개인의 시대를 말하다(1편)

 

송길영 :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결정한다 

송길영 작가는 저서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로, 우리 사회에 ‘핵개인’이란 화두를 던졌어. 송 작가가 말하는 핵개인이란, 스스로  ‘자기 서사’를 만드는 사람이야. 핵개인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주체적인 의사결정을 내려. 

“예전에는 대학이나 전공조차 오롯이 내 결정이 아니었어요. 부모님이나 선생님, 선배의 말을 들었죠. 이제는 그들에게도 답을 구할 수 없어요.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사회적인 역학이 깨져버렸거든요.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시대가 왔어요.”
_송길영 작가

AI(인공지능)와 기술의 발전도 핵개인 시대를 앞당기고 있어. 근면성과 순응성이 빛을 발하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야. 열심히 벤치마킹 하는 것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거든. 레퍼런스를 참고해서 카피 쓰고 디자인하는 건, 이제 AI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어려워. 

남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개척해야 해.  AI의 경쟁자가 아니라 AI가 학습하려고 하는 대상, 즉 오리지널 창작자가 돼야 한다는 거야. 

“새로운 걸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걸 구글에 검색했을 때, 비슷한 게 나온다면 하지 마세요. 남들이 이미 한 얘기는 하지 마세요. 있는 얘기를 전달하는 건, 이제 AI가 합니다. 지금은 전달자의 시대가 아니라, 창작자의 시대입니다.”
_송길영 작가

핵개인과 AI의 등장으로 일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어. 과거에는 동료나 협력사, 외주사와 일하는 게 기본값이었지. 지금은? 유튜브를 스승으로 두고, 코파일럿*을 동료 삼아 혼자 일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어.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무용 소프트웨어로 파워포인트 엑셀 등에 AI를 결합해 문서 초안 작성, 마케팅 문구 작성, 데이터 분석 등을 돕는다.

마케팅과 브랜딩,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직군에서 그 변화는 더욱 빠를 것으로 보여.

“첫째로 이들 산업군은 언어가 정교하기 때문에 규칙이 섬세해요. 그래서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오히려 높죠. 두 번째로 쌓인 정보가 많아요. 레퍼런스가 많아서 머신러닝 하기에 좋다는 거예요. 세 번째로 부가가치가 높아요. 원래 혁신은 고소득 산업에서 일어납니다.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동인이 있으니까요.”
_송길영 작가

 

12월 12일과 13일, 홍대 무신사 테라스에서 롱블랙 <관점 24 : 비즈니스의 내일을 말하다> 컨퍼런스가 열렸다. ⓒ롱블랙

 

생존법 : 분류되지 마라 

자, 그럼 핵개인 시대에 브랜드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송길영 작가는 “핵개인 시대에는 한 카테고리로 분류되지 않는 브랜드가, 가장 좋은 브랜드”라고 봐. 개인 또한 그러한 존재가 돼야 한다고 말하지.

“분류되는 순간, 시장점유율Market share로 싸웁니다. 경쟁이 필연적이에요. 브랜드뿐 아닙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죠. 근무시간이 오전 9시부터여도, 옆자리 박 대리가 오전 8시에 오면, 경쟁에서 밀려요. 나도 더 빨리 와야겠죠. 그렇게 죽을 때까지 상대의 편의에 의해 내가 조련당할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없죠. 유일한 사람이 되는 순간, 더 이상 경쟁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게 바로 브랜딩이에요.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는 바로 그때부터, 살아남는 거예요. 슈프림은 슈프림인 것처럼.”
_송길영 작가

예전엔 브랜드의 상품력, 개인의 능력만 있으면 그 가치를 인정받았어.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갈수록 그 비교는 무의미해지고 있지. 수준이 상향평준화 됐거든. 상품력과 개인의 능력에 더해, 진정성을 증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 

“분류되지 않는 정체성은 곧 고유함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고유함은 주장의 영역이고, 진정성은 평가의 영역이에요. 고유함을 아주 오랫동안 주장해야 진정성 있다고 평가받을 수 있죠. 그러면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수 있어요. 브랜딩이 고민이라면 거울을 보세요. 내 이야기를 하면 돼요.”
_송길영 작가

그래서 무엇보다 ‘자기 서사’가 중요해.  

“앞으로 뜨는 건, 서사입니다. 서사는 성장과 좌절이 누적된 나만의 기록이에요. 좌절 없이 윤색된 이야기라면 대부분 거짓이에요. 내가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더 큰 배움이 생기니까요. 나의 길을 가되,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기만 하면 돼요. 중간중간 체크 포인트를 만들면서. 세상은 바뀌고 있어요.

우리는 다 같이 핵개인이 되어갑니다. 중심을 내 안으로 가져오세요.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대등하게, 각자 자기 삶을 잘 사는 사회를 맞이하세요.”
_송길영 작가 

 

 

송길영 작가는 저서 『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으로 우리 사회에 '핵개인'이란 키워드를 던졌다. ⓒ롱블랙


Chapter 2.
헬리녹스 : 아웃도어의 틀을 깨고, 취향을 더하다

헬리녹스가, 바로 그 분류되지 않는 브랜드야. 캠핑용품을 만드는 아웃도어 브랜드라고만 정의하기에는 무언가 달라. 캠핑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사거든. 슈프림, 스타벅스, 나이키, 메종키츠네 등과 컬래버레이션해, 각 브랜드의 팬덤까지 껴안아.  

헬리녹스의 뿌리는 동아알루미늄이란 제조사였어. 라영환 대표의 아버지인 라제건 대표가 창립한 곳이야. 백패킹 텐트를 지탱하는 얇은 폴대를 만들어서, 이 분야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로 성장했어. 하지만 시장 자체가 작았어. 

소비자층이 두터운 시장을 찾다가, 2009년 헬리녹스라는 브랜드로 캠핑용품을 만들었어. 당시 스물네 살의 라영환 대표가 브랜드를 맡았어. 2012년 출시한 접이식 의자 체어원으로, 빠르게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 나갔지. 하지만 라영환 대표 눈에는 캠핑 시장도 작아 보였어. 

“솔직히 저는 캠핑도, 등산도 잘 안 합니다. 아웃도어 제품을 쓸 일이 없어요.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마니아를 빼고는 다들 비슷합니다. 캠핑 시장에도 한계가 있다고 봤어요.”
_라영환 헬리녹스 대표 

라영환 대표에게는 고민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해. ‘아버지의 기술로,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들 수 있을까.’ 

“제가 좋아하는 건 패션과 문화,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이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제품화할까, 고민했죠. ‘아웃도어 제품이지만 집 안에서도 쓸 수 있는 것.’ 심지어 쓰지 않아도, 그저 소유하고 싶은 걸 만들어 보자 싶었습니다. 그 답을 컬래버레이션에서 찾았어요.”
_라영환 헬리녹스 대표 

라 대표는 하고 싶은 걸 하기 시작했어. 핵개인이 된 거야. 기능이 제1의 덕목인 아웃도어 제품을, 소장품으로 탈바꿈시켰지. 자신의 취향을 듬뿍 담아서. 

예를 들어, 2015년에는 일본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네이버후드와 캠핑용품을 만들었어. 2016년에는 한국 브랜드 최초로 슈프림과 컬래버했지. 여기에 포르쉐, 라이카, 루브르박물관과 방탄소년단까지. 2016년 235억원이었던 연 매출은 2022년 770억원까지 상승했어. 

헬리녹스 라영환 대표는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까지 헬리녹스의 고객으로 만들었다. ⓒ롱블랙


컨슈머 모먼트 : 누구에게나 우리 고객이 되는 순간이 있다

라영환 대표의 전략은 왜 통했을까? 고객도 핵개인이 돼 가고 있기 때문이야. 과거 기업들은 인구통계학적 특성에 따라 고객을 구분했어. 직장인, 학생, 여성, 20대, 이런 식으로. 이 분류에 따르면 헬리녹스의 고객은 너무 좁았지. 

대신 헬리녹스는 ‘컨슈머 모먼트Consumer moment’에 집중했어. 개개인의 일상 속 한순간을 파고들기로 한 거야. 캠핑 마니아든 아니든,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헬리녹스가 필요한 순간은 있다고 가정하는 거지.  

“한 사람, 한사람에게는, 우리 브랜드의 고객이 될 각자의 순간이 있어요. 이를 ‘컨슈머 모먼트’라고 합니다. 캠핑장이 아니라 집에서 독서할 때, 헬리녹스 의자를 쓰는 분들도 있어요. 스타벅스에서 커피 10잔 마시고, 선물 받은 분도 있고요. 아웃도어 마니아가 아니라도, 일상의 한순간에서 헬리녹스를 만나도록 하면 되는 거예요.”
_라영환 헬리녹스 대표

헬리녹스는 어떤 사람이든 헬리녹스와의 접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컨슈머 모먼트'에 집중한 마케팅을 펼친다. ⓒ롱블랙

Chapter 3.
이케아 : ‘우리 집’이 아닌 ‘내 공간’이 되다 

이케아코리아는 스스로를 가구 브랜드라고 정의하지 않아. 홈 퍼니싱* 브랜드라고 말하지.
*집을 뜻하는 홈Home과, 단장한다는 뜻의 퍼니싱Furnishing을 합친 말. 가구나 조명은 물론 벽지부터 침구, 카펫 그리고 인테리어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품을 이용해 집을 꾸민다는 뜻.

“이케아는 가구회사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신제품을 기획할 때 가구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집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죠. 그래서 라이프스타일을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요.”
_신혜정 이케아코리아 C&CI 총괄

이케아는 3만7000명의 글로벌 소비자를 대상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조사했어. 신 총괄은 그중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추출한 인사이트를 공유했어. 

“한국의 집에는 ‘내’가 없었어요. 획일화된 주거문화에 익숙합니다. 전체 인구의 86%가 아파트나 빌라에서 살고 있죠. 우리나라 아파트의 76%가 17평과 33평 사이에요. 비슷한 평수에, 평균 방 개수는 2.5개. 여기에 2년마다 옮겨야 하는 전세 시스템까지. 집이 ‘내 공간’이 아닌, 자산으로 인식돼 왔어요.”
_신혜정 이케아코리아 C&CI 총괄

하지만 조금씩 변화가 감지된대. “어떨 때 집에서 즐거움을 느끼냐”는 질문에, 한국 소비자의 과반수가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라고 답했지. 주거 문화의 중심이, 가족에서 ‘나’라는 개인으로 옮겨가고 있는 거야. 

“한국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하고 있어요. 첫 번째는 ‘독립적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한집에 같이 살아도, ‘내 방은 내 것’이라는 소유주 의식이 생겼죠. 부부의 40%는 각방을 써요. 20%는 같은 방에서 침대를 따로 쓰죠. 같은 집, 같은 방에서도 개인의 취향과 생활이 중요해지고 있는 거예요.”
_신혜정 이케아코리아 C&CI 총괄

 


이케아는 한국 주거 라이프스타일의중심이 개인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을 포착했다. ⓒ롱블랙


 

개인 맞춤형 공간이 더 정교해진다

핵개인의 시대에는 집의 형태도 달라질 거야. 이미 개인 맞춤 공간이 늘고 있다고 해. 

“요즘 신축 아파트를 지을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개인 맞춤 공간의 세분화’예요. 이전처럼 전 세대가 같은 공간을, 같은 용도로 사용하는 아파트가 아니란 겁니다.”
_신혜정 이케아코리아 C&CI 총괄

신혜정 총괄은 래미안의 ‘더 넥스트 모듈러 홈’을 예시로 들었어. 아파트를 벽식 구조가 아닌, 기둥식 모듈러 구조로 만든 거야. 입주 전 내가 원하는 곳에 안방을 넣거나, 옷방을 만들거나, 벽을 터서 쓸 수 있어. 아이가 생기거나 독립하면, 상황에 맞춰 또 바꿀 수도 있지. 알파룸이나 엔터라운지* 같은 취미용 공간 역시 아파트의 경쟁력이 되고 있어.
*현관 크기를 확장해 식물을 키우거나, 놀이터를 만들거나 홈 오피스 등으로 활용하는 공간

이케아코리아도 소비자의 니즈를 따라 가구를 더 잘게, 세분화하고 있어. 침대를 따로 쓰는 부부가 침대를 놓는다고 해보자. 가로 110cm짜리 슈퍼 싱글 두 개를 놓기에는 침실이 좁아. 그렇다고 90cm짜리 싱글을 놓기엔 침대가 작지. 이케아는 가로 100cm짜리 침대를 출시했어. 

“핵개인 시대의 집은 ‘나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공간’이에요. 한국인은 아직 집에 내 정체성을 반영하는 데 서투르죠. 그 솔루션을 제시하는 데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고 봅니다.”
_신혜정 이케아코리아 C&CI 총괄

 


신혜정 총괄은 "나의 취미 공간에 돈을 아끼지 않는 시대"가 왔다고 분석한다. ⓒ롱블랙


- 2편에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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